제 9장 동서양의 대화는 가능한가
1.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서구 근대과학이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인간소외와 환경위기 등의 부작용을 낳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부작용이 심각해지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반성 혹은 환경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생태주의 혹은 동양철학이 떠올랐다.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동양철학에서 보는 자연에 대한 프로그램은 초월주의를 거부하는 인간학에 밀착되어 있다. 서구과학의 관점은 주관과 객관, 인간과 자연, 중심과 주변, 실체와 현상이라는 이분법을 낳았다. 반면에 동양인이 보는 세계는 천지와 만물이 통합된 개념이며, 초월적 지위의 천지만물 창조자는 없다. 단지 만물이 운동하는 운동의 주재자만이 세계를 초월한 외부가 아니라 만물 내부에 있을 뿐이다.
동양철학을 일반적으로 전일적 세계관을 지닌 철학이라고 한다. 동양철학은 자연을 정적인 대상으로 보고 추상화시켜 낸 서구과학과 달리 동적인 자연에 대한 즉자적 직관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사유가 아니라 주관 경험과 대상을 통일한 연속적 세계를 추구하였다. 동양사상의 궁극 목표는 형이상학적인 존재탐구나 절대 인식을 찾는 일이 아니라, 행위의 지혜를 찾아가는 것이다. 서구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자연적 도덕관은 사회 규범 혹은 법적 통제의 차원에서 다루어지지만 동양에서는 자연관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자연관찰이 서양에서는 과학을 위해 필요하지만 동양에서는 인간이해를 위한 첫발이다.
2. 그 차이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동서양 모두는 후기 산업사회에 들어와 생명공학과 정보산업 등의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에 가까운 신뢰, 세계경제의 일원화 현상 등 예측 불가능한 전환적 사건을 겪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소외의 속도를 부채질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문명위기의 원인으로 서구의 과학적 기계론, 이원론적 세계관, 형이상학적 결정론, 그리고 방법론상의 분석주의와 환원주의 등을 들고 있으며, 동양사상에서 새로운 처방을 찾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그러한 처방을 우리도 여과 없이 수입하여 쓰고 있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서구 기계론이나 결정론의 부정적 측면을 중화시키기 위하여 생기론이나 기 철학에 대책 없이 심취하는 일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이나 뉴턴의 기계론이 오늘의 위기를 자초한 정신적 뿌리라는 표피적인 단서를 잡고, 단지 그 반작용으로 주역이나 노장철학을 미화하면서 서구사상을 대신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한다. 동양학 붐이 일어난 것은 좋으나 서구의 관점으로 그들의 치유책이 된 동양학이 우리에게도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동양사상이 그렇게 치밀한 반성 없이 유포되는 일은 일반인들에게는 현실 도피적 자기 위안만을 줄뿐이다. 서구의 논리적 분석주의나 과학적 환원주의가 갖고 있는 해부학적 태도가 못마땅하다 해서, 그 반작용으로 미신과 정령론에 가까운 개체보신의 신비주의에 빠지는 일은 더더욱 눈먼 판단을 부채질 할 뿐이다.
서구인이 동양학을 신비주의로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우리 스스로 동양학을 신비주의 범주에 가두는 일은 일종의 학문 종속이며 문화 종속인 셈이다. 이런 현실 상황을 조심해 보지 않으면 다시 문화 제국주의 시대가 올 수 있다. 제국주의의 중심은 지리적 중심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병리적 중심이다. 그렇게 중심을 잃으면서 동양을 되찾겠다고 하는 것은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3. 동서양의 대화는 표피적인 비교로 시작되어서는 안 된다.
동양과 서양을 표면적 비교로 그칠 것이 아니라 동서양 삶의 양식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묶여진 오늘의 지구화 이후, 동양과 서양을 칼로 쪼개듯 나눌 수는 없다. 서구문명을 심화된 갈등의 역사 속에서 받아들인 현대 동아시아 개도국의 문제는 서양이 심어놓은 제국주의의 상처가 이제는 서양보다 더 서양적으로 곪아 버린 사회병리 현상들을 양산하고 있는 점이다. 동양과 서양은 이제 충돌이냐 조화냐 라는 논쟁 이전에 대화의 심도를 높여가야 한다. 서양의 마음이 서양에만, 동양의 마음이 동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동서 구획은 지리적 구분을 벗어나 있다. 그래서 고유하고 경직된 동양의 정체성만을 고집하는 동양의 마음은 자칫 미로로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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