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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산책

철학과, 동양철학, 방통대 등 동양철학산책 핵심 요점 요약 정리 5. 퇴계․율곡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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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퇴계율곡 산책

1. 사화의 시대와 사림파 유학자들

 

조선은 주자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아 중앙집권적 관료제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편찬하여 제도 정비에 힘썼고,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하였다. 권근은 󰡔입학도설󰡕, 󰡔오경천견록󰡕 을 지어 조선 주자학을 선도하였다. 이들 관학파는 중앙권력을 독점하여 대토지 소유자가 되었고, 15세기에는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세력이 커졌다. 그래서 성종은 왕권 안정을 위해 중소지주출신 신진 유학자들을 대거 기용하였다. 이로써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하면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중중반정 이후는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가 이상사회를 구현한다는 의지로 개혁정치를 주도하고 향약을 보급하였다. 아울러 추천제인 현량과를 통해 신진 학자를 발탁하여 훈구파를 견제하였다. 그러나 조광조의 개혁은 훈구파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쳐 기묘사화로 끝이 났다.

거듭된 사화로 사림파는 지방에 은거하면서 학문에 몰두하였고, 그 대표 인물이 서경덕이다. 그는 기()로 온천이나 바람 같은 자연현상을 설명하였고, 기를 자기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 근원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기일원론적 세계관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언적은 이()를 중시하였으며, 조한보와의 무극태극논쟁을 통해 주자학에 대한 불교적, 노장적 이해를 비판함으로써 주자학의 순수성을 지켰다. 그는 태극의 본체를 단번에 깨친다는 조한보의 논의를 비판하였고, 학문수행 또한 일상생활을 떠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황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2. 사단칠정 논쟁과 주자학의 한국적 전개

 

사화의 피해자였던 이황은 개혁의 좌절을 보면서 은둔을 택하였다. 이황의 철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대승과의 사단칠정논쟁이다. 사단(四端)은 맹자가 성선설의 근거로 제시한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이며, 각각 인지의 단서가 된다. 그리고 칠정(七情)󰡔예기󰡕에서 인간의 감정을 ()()()()()()()’으로 나눈 것에서 왔다.

기대승은 첫 편지에서 사단과 칠정이 모두 정이므로 사단이 칠정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으며, 현상세계에서는 이와 기를 나눌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황은 사단, 칠정 모두 정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가리키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구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와 기로 나누는 것이 옳다는 근거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내세웠다. 편지를 받은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은 대응개념이 아니며 칠정이 알맞게 드러난 것이 사단이라고 하였다. 특히 성은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눌 수 있지만, 정은 성이 기질에 실린 뒤라서 선악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나눌 수 없다고 보았다. 이황은 마침내 사단은 리가 발하면 기가 따라오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면 리가 타는 것이라고 하였지만 이발(理發)을 그대로 유지하는 점에서 처음 견해와 다를 것이 없다.

주자학을 개념 차원에서 정확히 이해한 것은 기대승이며 기본이념에 충실한 것은 이황이다. 주자학이 사물을 통해 밝히려는 대상은 사물을 지배하는 도덕 표준이었다. 따라서 그 의도에 따라 이론 기반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은 리의 작용을 강조한 이황이다.

 

3. 인심 도심 논쟁과 주자학의 완성

 

배워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명제는 대표적인 주자학의 학문관이다. 주자학 이전 학자들은 경전을 외우고 문자를 익힐 뿐, 내면에 들어있는 성인의 자질인 덕은 오로지 왕의 교화에 의지하였다. 그러나 송대 학자들은 훈고를 넘어선 창의적 해석을 통해 유가사상을 부흥시켰고, 이 같은 맥락을 한국적으로 다시 전개한 사람이 이이였다.

이이는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학자로서 젊은 나이로 벼슬에 나아가 20여 년을 지냈다. 그는 이치는 따져보지 않고 스승의 설이고 무조건 믿고 따르는 독경주의를 비판하고 자주적 학풍을 주장했다.

이이와 성혼의 인심도심논쟁(人心道心論爭)은 사단칠정논쟁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논쟁은 이황이 죽고 2년 뒤 성혼이 이이에게 인심과 칠정은 기의 작용이고, 도심과 사단은 이()의 작용이므로 이황의 이기호발설이 옳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시작되었다. 이이는 이기 불상리(不相離)를 강조함으로써 이황의 호발설을 부정하였고, 기가 발하고 이()가 타는 한 가지만을 주장하였다. 또한 인심과 도심은 다른 마음이 아니라 동일한 마음의 두 상태를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붙인 이름이라고 보았다.

이이의 주장은 이기론의 기본명제를 모순 없이 치밀하면서도 독창적으로 설명해 내었다. 이이는 또 보통 주자학자들과 달리 육체적 욕구를 인정하였고, 욕구 자체가 악이 아니라 지나치거나 모자란 것이 악이 된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마음을 둘이 아니라고 본 것도 논리적 정합성을 지닌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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