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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산책

철학과, 동양철학, 방통대 등 동양철학산책 핵심 요점 요약 정리 8. 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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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실학

1. 실학이란 무엇인가?

 

실학은 조선 후기의 사상이다. 실학자들은 실증과 실용을 바탕으로 의리보다 박학(博學), 실천을 중시하는 원시유학 정신의 회복을, 청대 고증학적 방법의 수용을 주장하였고, 리보다 기를 중시하였다. 실학에는 민주주의자본주의, 근대 자연관과 인간관, 민족주의의 요소가 있다고 평가된다. 임진병자 양란 이후 조선은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신분 질서가 흔들리며, 정치세력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하지만 18세기 무렵 생산력이 다시 늘고, 신분변동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으며, 탕평책으로 붕당의 폐해가 일부 회복되었다. 이 같은 발전상도 중요 요소로 작용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명나라가 망하고 일본이 부각되면서 동아시아 질서가 재편되었고, 서양 문물이 들어왔다. 명의 멸망 이후 지식인들은 북벌을 준비하기도 했고, 명에 대한 은혜를 생각하며 명 황제를 모신 만동묘를 짓기도 하였다. 하지만 청나라로 가는 사신 행차가 명나라 때보다 늘면서 서양 과학을 포함한 많은 문물이 들어왔다.

성호학파는 이익(李瀷)과의 사승관계로 형성되었으며, 경기와 충청에 근거를 두었다. 친족 관계로 얽힌 경우도 많아서 학파 이상의 당파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학 수용 문제에서 좌우파로 나뉘었다. 또 북학파는 서울 북촌 일대에 모여 시국관과 인생관세계관을 공유했던 학자들이다.

 

2. 새로운 자연 지식과 세계관의 전환

 

실학자들은 종교와 분리해서 서양과학을 받아들였지만 서양의 자연 지식은 세계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홍대용은 북경 여행 전에 천문관측 기구인 혼천의를 만들었으나 북경에서 청나라의 우수한 문물을 보고 서양 선교사들을 만난 경험을 토대로 의산문답』․『주해수용을 지었다. 의산문답에는 지구설, 지구자전설, 무한우주론, 몽기설 등이 있다. 새로운 자연 지식은 인간 중심, 중국 중심, 지구 중심의 세계관을 극복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홍대용은 대상 세계를 사물의 관점에서 보는 이천시물(以天視物)의 방법론을 통해 중국 문화와 조선 문화의 차등을 부정하였고, 신분차별을 반대하였다.

북학파의 박지원은 법고창신(法古創新)과 사의(寫意) 정신을 핵심으로 문학창작론을 제기하였다. 법고창신은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만드는 것이며, 사의는 작가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박지원의 문학론은 조선풍의 강조로 귀결되었다. 홍대용이 민간 시가를 모아 편찬하면서 자연스러운 시정(詩情)을 긍정한 것과 정약용이 조선시를 찬양한 것은 모두 박지원의 예술론과 통한다. 또한 경세론에 뛰어난 박제가는 중상론(重商論), 농업기술개량론, 적서차별철폐론, 선박수레활용론, 양반상인론, 국제무역론, 소비긍정론 등을 주장하였다.

 

3. 탈주자학적 경학과 제도개혁론

 

이익은 43경에 대해 질서(疾書)를 썼고, 정약용도 거의 모든 경전에 대해 저작을 남겼다. 성호학파는 이익이 강조한 자득을 바탕으로 주자학적 경학에서 벗어났고, 정약용에 이르러 큰 성취를 이루었다. 정약용은 원시유학 및 육경(六經) 정신의 회복을 기치 삼아 성리학과 훈고학을 넘어섰다. 고증학 자료를 섭렵하였고 일본의 경학 자료까지 읽어 이룩한 결과였다. 정약용은 영명론을 주장하였다. 영명(靈明)은 인간의 마음, 귀신, 상제의 세 양태가 있는데, 성리학의 상제는 를 의인화한 것이지만, 정약용은 만물을 통솔하는 인격체처럼 보았다. 그리고 그의 제도개혁론은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에 담겨 있다. 이 책들은 경전이나 선유의 책에서 문장을 뽑아 자신의 견해를 붙인 것이다. 그 밖에 젊은 시절에는 협동농장제 같은 여전제(閭田制)를 주장하였고, 나이 들어서는 정전제(井田制)를 지지하였다.

 

4. 기학과 근대적 세계관의 모색

 

최한기는 서양의 지적 자극이 물리적 충격으로 바뀌던 19세기 중기 인물이다. 그는 과학기술에서는 지구전요』․『성기운화』․『신기천험』․『운화측험을 썼고, 새로운 학문 체계의 확립으로는 기측체의, 인정, 기학을 썼다. 최한기는 신기(神氣)’라는 말을 만들어서 현상을 천지의 신기형체의 신기로 나누었다. ‘천지의 신기는 운화 또는 역행(力行)’으로 나타나는 자연계의 끝없는 생성소멸 과정이고, ‘형체의 신기는 추측을 통한 사람의 지적 활동이다. ‘추측(推測)’은 감각 경험을 통해 지각이 생기고, 지각이 쌓여 추측이 되는 추리 작용을 의미하며, 최한기는 오늘날의 인식에 해당하는 ()’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은 신기와 신기가 통하는 것이며, 추측의 이치가 유행의 이치와 통함을 말한다.

최한기는 자신의 학문을 기학이라고 하였다. 기는 끊임없는 운동과 순환을 통해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존재이며, 자연사회개인에 맞추어 대기운화통민운화일신운화의 세 등급으로 나뉜다. 기학은 실학이 만든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최한기는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자연을 객관화하면서 로 서양의 물질개념을 감싸 안으려 했다. 이 점이야말로 동양 전통과 서양 근대를 넘어선 제3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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