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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산책

철학과, 동양철학, 방통대 등 동양철학산책 핵심 요점 요약 정리 2. 공자․맹자․순자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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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공자맹자순자 산책

1. 백화제방의 시대와 유가학파

 

춘추전국(B.C 770-B.C 221)은 백가쟁명(百家爭鳴),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였다. 그 배경에는 철제농기구, 이랑 재배와 우경(牛耕), 관개수로, 과학기술의 발전과 심화된 토지의 사적 소유제가 들어 있다. 특히 신흥 지주들이 혈연, 지연과 상관없이 등용한 새로운 지식인들이 바로 제자백가이다. 그 가운데 생산 증대에 따른 민()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들의 안녕을 보장하고 그로 인해 획득된 자발적 협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동체 질서를 만들려는 유가학파가 등장한다.

 

2. 공자, 위대한 스승

 

공자는 젊어서 창고지기, 동산지기 같은 천한 일을 했지만, 귀족에게만 전수되던 과목으로 삼천 제자를 길러 낸 최초의 사립학교 교육자였다. 특히 그의 사상은 제자들이 쓴 최초의 어록 󰡔논어󰡕에 잘 나타나 있다. 천하를 다니며 자신을 써 줄 군주를 찾았지만 만년에는 노나라로 돌아와 가르침이 있을 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표현처럼 간단한 예만 지키면 누구나 받아들였다.

공자는 군자라는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었다. 󰡔논어󰡕에서는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군자는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만 이익을 위해 편 가르지 않으며 소인은 이익을 위해 뭉치지만 다른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처럼 공자는 군자를 중심으로 자율적인 공동체를 구상하였는데 그것이 통치자의 인격에 바탕 한 덕치주의이다. 덕치는 강제 수단인 법치와 달리 사회적 약자도 함께 사는 세상이었다.

공자는 인()으로 표현되는 인간적 가치를 추구했다.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 또 가장 뛰어난 제자 안연에게는 사욕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라고 답하였다.

 

3. 왕도의 주창자, 맹자

 

맹자는 인의의 정치를 주장했다. 맹자는 부국강병책이란 하위 조직을 분열시켜 국가를 붕괴시키는 패도정치라고 보았다. 따라서 인의를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회복함으로써 국가의 번영이 가능하다고 역설하였다.

맹자는 항산이 있으면 항심도 있지만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고 하여 생산조건과 도덕심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또한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하는 여민동락을 실천하라고 하였고, 그렇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맹자의 혁명론은 혁명 주체를 백성으로 본 것이 아니지만 백성에 대한 정치적 고려를 적극 논의한 점에서 매우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맹자는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독거노인,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면서 빈곤문제 해결을 왕도정치의 출발점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인간은 사단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성선설을 주장했다. 소 한 마리를 사랑하는 마음이면 충분히 백성을 사랑하여 사해를 보존할 수 있다고 한 주장의 근거도 성선설이었다. 따라서 성선설은 왕도정치 실현을 위한 형이상학적 근거이다. 그 뒤 유학자들은 맹자의 견해를 따라 성선설을 인간관의 기본으로 삼았다.

 

4. 고대철학의 집대성자, 순자

 

순자는 객관적이고 치밀한 논증을 통해 방대한 철학체계를 구축한 중국고대철학의 집대성자이다. 그는 실천 의지를 중심으로 타고난 인간의 본성을 개조한다는 화성기위(化性起僞)론을 주장함으로써 맹자의 성선론을 비판하였다. 또한 신비주의적 자연관을 반대하여,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는 것은 기우제를 지내지 않았는데 비가 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 같은 주장은 세상일을 하늘이 결정한다는 운명적 사고를 깨뜨리고 인본주의적 사고의 기틀을 만든 것이다.

순자는 인간이 힘은 소보다 못하고 달리기는 말보다 못하면서도 소와 말을 이용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능력 때문이라고 보았고,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점에 주목하여 상하 신분질서를 유지시키는 예를 중시하였다. 이 같은 사회관을 기초로 사회 안정을 해치는 일체의 행위를 부도덕한 것으로 보고 그런 행위를 막기 위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분업적 역할을 강조하였다. 이는 통치자의 덕을 강조한 공자와 맹자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통치방식이었다. 이 같은 생각은 분열과 혼란을 막을 강력한 군주의 대두를 열망하는 지식인들을 대변한 것이다.

사실 성선설이 인간 본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규정이라면 성악설은 이차적이고 사회적인 규정이다. 순자가 본 인간의 본성은 사회적 조정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순자가 제시한 인간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한다는 명제는 그런 상태를 방치하는 것이 사회적 차원의 악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성악설은 인간이 본성대로 행동했을 때의 결과에 주목한 규정이다. 더구나 성악설은 인간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악행과 사회적 조건 사이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차단함으로써 민생과 사회와 문화를 보존하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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