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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문학론

중문학과, 중국사, 방통대 등 중국현대문학론 요점 요약 정리 7. 좌익작가연맹과 문예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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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좌익작가연맹과 문예대중화

1920년대 후반에 대두하였던 혁명문학론은 점차 근대적인 문인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확산되어 나가 중국 문단의 가장 주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주로 일본과 러시아의 좌익 문학론에 경도되었던 중국의 젊은 좌익 문인들은 중국의 문단이 사회주의 혁명의 구현을 위해 실천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명제를 지상과제로 자임하였습니다. 이념적 확신에 차 있었던 그들은 우익 민족주의 문인들은 물론 魯迅茅盾을 비롯한 중도적인 문단의 중진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비판을 퍼부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다분히 생경하고 비현실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대적 조류와 중국공산당의 지원을 등에 업고 문단의 주요한 쟁점이 되었으며 그들의 활동은 좌련이라고 하는 범문단적 조직체의 결성에 있어서 중심적인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 좌익 문인들의 역량이 특별히 뛰어났다기보다는 시대상황으로 인한 현상이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좌련은 문예대중화라고 하는 새로운 과제를 추구하였으며, 문학혁명을 통해 중국 문단의 주류를 형성하였던 서구 근대문학을 모델로 한 문학활동의 흐름에 대해 정치성과 문학성의 일체화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문학이라는 대안적 흐름을 제시하였습니다.

 

1. 좌익작가연맹의 결성

1930년에 결성된 좌련은 공산당원 문인들과 그에 동조하던 좌익 문인들, 나아가 국민당에 대해 비판적이던 중도적인 문인들까지를 하나로 묶어 이후 중국 문단을 주도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고 좌파 문학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했던 중도적 성향의 문단 중진 魯迅이 좌련의 주석으로 일했다는 사실은 좌파 문인들의 세력이 당시 상당히 컸음을 뜻한다고 할 것입니다. 좌련은 국민당에 대한 반대와 사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는 정파를 아우르는 일종의 보편적인 지향과 함께 프롤레타리아계급을 위해 봉사한다는 좌파적 강령을 동시에 내걸었습니다. 보편적인 지향은 魯迅茅盾을 비롯한 중도적인 양심적 문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일 테고, 좌파적 문학 강령은 좌익 문인들의 문학적 지향을 나타내는 것일 것입니다.

이처럼 장개석의 국민당이 강력하게 탄압했음에도 불구하고 좌파 문학이론이 중국 문단의 주요 쟁점이 되고 젊은 문인과 지식인들을 흡인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시대 상황에 그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당시 중국의 젊은 세대는 애국애족과 사회정의라는 시대적 사명감에 불타 있었고 그들의 열정은 당시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 상태를 경험했던 제3세계 국가들의 보편적인 반서구적 내지 친러시아적 정서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19274.12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장개석이 군벌을 비롯한 기득권계층과 밀착하고 당시 중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 세력인 일본과 미국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로 대응하던 상황은 양심적인 지식인과 애국적 열정으로 충만해 있던 젊은 세대의 반감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산당이 국민당에 대한 가장 주요한 저항 세력으로 부상하고 대안세력을 자임하던 상황은 중국의 젊은 문인들로 하여금 좌파적 문학이론에 대해 우호적이 되도록 하는 상황을 조성하였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좌련은 장개석에 의해 불법단체로 규정되어 탄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관지들을 운영하고 여러 부서를 설치하여 지하운동의 방식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

 

2. 문예대중화

좌련이 전개했던 활동 가운데 문학사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것은 문예대중화에 대한 이론 혹은 운동입니다. 문예대중화는 당시 중국 문인들의 사회적 책임감과 열정을 토대로 한 운동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술적 수준의 제고보다는 자신들의 문학을 통해 중국의 현실을 개선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그를 위해 자신들의 문학과 현실적 정치운동 내지 사회운동의 연결을 추구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문학화 현실의 연계 혹은 일체화를 추구한 것입니다.

좌련의 기관지가 되었던 <대중문예>라는 문학 간행물을 통해 좌련의 문인들은 중국의 역사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문학적 과제가 문예대중화임을 천명하고 활발한 논의를 전개하였습니다. 좌련 출범 직후 대두되었던 문예대중화의 논의는 대중에게 중국의 현실을 개혁할 대안이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점, 그런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대중적인 언어와 문학양식으로서 대중의 수준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내용으로 볼 때 원론 수준의 반복이 대부분이었지만 논의와 논쟁의 과정에서 좌익 문인들은 5.4운동 이후 중국 문단의 주류를 형성해 온 서구 근대문학에 대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문예대중화의 논의는 의욕이 너무 앞서 나가고 급진적이고 경직된 논리들이 비합리적으로 제기되는 등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술성의 개발과 개성의 추구 등을 주요 과제로 삼아 온 서구식 문학에 대해 현실에 대한 기여와 대중에 대한 전파력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문학이라는 대안의 가능성에 대해 중국의 문인들이 한층 깊은 이해를 갖게 된 점이 가장 큰 의의라고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문학혁명 이후 서구 근대문학을 모델로 삼아왔던 중국 현대문학의 궤적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겠지요.

 

3. 瞿秋白의 문예대중화론

당시 문예대중화에 대한 논의 가운데 瞿秋白의 논의가 가장 돋보입니다. 그는 언어와 문자, 형식과 체제, 창작방법론, 작가의 자기 개조 등을 주요한 내용으로 한 이론을 발표하였습니다. 전형적인 공산당원 문인의 입장에서 논의를 전개한 瞿秋白은 논의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당시 문예대중화에 대한 주장을 제기했던 문인들 가운데 가장 조직적이고 나름대로 내용이 있는 주장을 내놓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의 주장은 당시 중국 문단의 현실을 반영했다기보다는 일종의 당위성을 전제로 한 논의여서 창작으로 뒷받침되기는 어려운 것이었지만 문예대중화의 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4. 문예대중화론의 문학사적 의의

당시 젊은 지식인과 문인들의 열정과 중국적 현실의 결합을 추구했던 문예대중화론은 우선 중국적인 특수한 상황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서 제기되었던 논의였습니다. 그리고 크게 본다면 당시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사회주의의 활력을 반영하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중국의 문인들은 문예대중화에 대한 논의를 통해 문학혁명 이래 발달해 온 중국 현대문학의 방향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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