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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학원론 요약

농학과 / 농업 / 농촌지도사 / 연구사 대비 알기쉬운 농학원론 정리와 기출문제 2. 농학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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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농학의 성립

* 학습목표
테어가 농학사상의 성립에 기여한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농학성립 이전의 발전단계를 설명할 수 있다.
합리적 농업 원리를 제시한 테어의 근본사상을 설명할 수 있다.
보상설의 개념과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 학습내용


1. 농학성립 이전의 발달단계
18C에 와서 계몽적 시대로 크게 전 전환되면서 농지제도에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농업경영의 형태도 혁신이 일어나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봉건적인 영주와 농민과의 관계에 있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혼재지제, 공동토지 이용제도, 삼포식 경작제도 등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경지가 영세하여 토지이용집약도가 높을 때는 농지가 산재하여 많은 종류의 작물재배가 영주에게 유리한 혼재지제와 토지와 농민을 결박관계에 두어서 토지의 공동책임을 영주가 갖도록 하는 공동토지 이용제도, 동작물 - 하작물 - 휴한이라는 삼포식을 강요하는 경작제도 등의 폐지, 해체의 기운이 일어나고 공유지의 사유화가 진전되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종래에 실시해 왔던 삼포제를 중지하고, 개개의 농장에서 삼포식의 농업경영방식 중 휴한 대신에 클로버와 같은 콩과목초나 사료용 비트 등 중경작물을 도입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가축을 우리에 넣어 기를 수 있게 변했던 것이다.
테어 이전에 있어서 농학의 전사적 단계로서 4개의 학파적인 계보가 있었다.
① 가부학파, ② 관방학파, ③ 실험학파, ④ 기업학파가 그것이다.

1) 가부학파
1650~1750년에 걸쳐 농업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취급한 학문이라 하겠다. 가부학은 헤레바히, 그로저, 야코브, 컬러를 비롯해서 뮌히하우젠, 케르머샤우젠에서 끝났는데, 그 중에서 뮌히하우젠(Munchhausen)은 이 학파를 대표할 만큼 6권에 이르는 “가부학”이라는 대저서를 남겼다. 그는 가부학자라기 보다는 농학적이고 체계적이었다. 그러기에 골츠는 그를 평하여 그는 가부학파에 속할 사람이 아니고 18C 후반에 있어 다음 농업혁명에 직접 공헌했던 사람이라고 할 정도였던 것이다.

2) 관방학파
관방학파는 중상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가졌다. 이 학파의 최후를 장식한 학자이면서 농업연구에 공헌한 사람으로 베크만(J. Beckmann)이 있는데 그는 농업만을 떼어내어 대학교과서로서는 처음으로 “독일농업론”을 저술했던 것이다.
테어의 추상이론적 절대주의의 생각은 관방학파로부터 계승된 것이다. 이와 같은 추상적 원리에서 나온 농업의 이해도 중요한 인식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경종과 양축과의 사이에는 밀접한 내면적 연관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경지면적과 가축의 수가 비례한다고 주장했으며 또한 구비의 문제로부터 진전해서 밭 작부체계의 문제까지 생각하는 단계에 도달했던 것이다. 관방학파들은 이미 낡은 농업제도인 경작강제, 공동방목제, 부역제 등을 폐지하려는 정책적 주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낡은 농업제도는 합리적인 농업경영을 위해서는 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여 유스티(Justi)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① 취락되어 있는 농촌마을에 의지함이 없이 고립되어 있는 농장제에 따름이 좋다
② 경지가 좁고 긴 땅에서는 높은 합리성을 발휘할 수 없다
③ 휴한경지 및 뒷 그루경지 즉 예적경지에서의 공동방목도 합리화를 위해서는 좋
지 않다
④ 기사영 농장은 좋지 않고 경지는 소작인에게 대여하여야 하며 세습소작이 좋다
⑤ 부역은 전 시간을 빼앗기는 것으로 폐지되어야 한다.
결국 관방학파는 농민해방을 위해 강력하게 주장 공헌 한 셈이 된 것이다. 그들은 토지개혁에 의해 농업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고는 농업의 새로운 전환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경영방식이나 경영방법에 있어서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백한 인식에 달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3) 실험학파
1750년경부터 관방학파와는 별도로 실제농업에 종사하면서 연구가 이루어지는 사람들로서 “실험적 경제학자”라 불리는 사람으로 라이하르트(Reichart), 슈바르트(Schubart), 베르겐(Bergen) 등이 유명하다. 그들은 그리스나 로마 등의 고대문헌을 이용하거나 고답적인 이론대신에 현실적인 농업에 관한 재료와 그 측정, 그리고 그것을 변화시켜 그 결과를 조사한 것이다. 예를 들면, 경운의 깊이, 이랑의 넓이, 파종량, 수확량, 가축의 체중 등을 측정조사 하였던 것이다. 이들의 연구는 독일의 농학성립에 있어 기초를 제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슈바르트는 휴한을 폐지하고 목초를 재배할 것을 주장하여 클로버 보급에 힘써 그의 공적은 매우 커 “클로버전경”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였으며, 밭 작부방식의 전환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베르겐은 가축사양법 개량에 관한 연구로 가축 사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이것은 테어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4) 기업학파
18C에 있어서 영국의 농업은 비상한 발전을 보였는데, 그 안팎에는 우수한 농업연구자도 출현했던 것이다. 뿌림에서 기계뿌림에 의한 줄뿌림을 비롯해서 馬力中耕을 실시하여 중노동의 해소와 비용의 절감을 꾀했던 것으로, 이미 농기업적인 감각의 싹이 터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타운센드(Townshend)는 순무경으로 불릴 정도로 순무를 농업경영에 도입하는 이론을 제창하여 순무, 클로버 혹은 라이글래스 등을 조합한 윤작방식 즉 노퍽(Norfolk) 윤작방식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이론은 결국 지력을 높여서 땅값을 높여 결국에 기업적 농업으로의 길을 한층 강하게 발전시킨 것이다. 기업적 색체를 띠운 농업이 다수 출현하게 되었고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영(Arthur Young)으로서 그는 소농에 의한 영농을 배격하고 대농론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기업주의적인 농업론이며, 선진국이었던 영국을 배경으로 하여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후에 테어의 사상에 크게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2. 농학의 성립
18C를 통하여 농업에 관한 연구가 발전되어 왔으며, 독립된 과학으로서 농학이 체계화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 시기에 배출된 인물이 테어(Thaer)인데, 그는 19C 초 농학을 과학으로서 체계를 세우고 독립된 과학으로서의 위치를 만들어 내는 대업을 완수시킨 것이다. 테어가 농업, 농학에 뛰어든 학문적 동기가 된 것은 1780년 왕립농업협회 회원이 되면서였는데, 이 협회는 영국으로부터 많은 서적이 수입되었고 많은 영국의 서적과 연구에 접촉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그 뒤 “영국농업론”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1804년 테어는 동독일 뫼글린으로 농장을 옮겼고, 시기의 주된 업적은 전4권으로 된 “합리적 농업의 원리”를 비롯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것이다. 1810년에는 새로 설립된 Berlin 대학의 관방학 객원교수가 되었는데, 이 시기에 지금까지의 학문연구를 체계적, 일관적으로 기술하는데 전력을 다하여 드디어는 “일반농학입문” 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저서는 그의 생애의 일을 총결산한 저서로 가장 훌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테어의 학문은 순수하게 농업상의 지식, 문제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으로 체계화시킨 일이다. 소위 경제적인 문제와 기술적인 문제를 포함하여서 전체로서의 과학적 체계를 수립한 최초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농학의 개조라고 불리는 것이다.
테어는 농업경영을 자본의 운용체라고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농업을 자본의 투하로서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투하되는 제1의 자본은 고정자본, 제2의 자본은 유동자본, 제3의 자본은 토지자본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업에서는 재료자본이 여기에 해당된다. 토지 그 자체는 생산과정에서 소비되는 것은 아니나 토지에 내재하고 있는 물질, 원동력(부식질과 비옥도)은 재료적 의미를 가짐으로서 생산물로 변하여 잃어져 가는 것이며 그리고 그것이 끊임없이 보상되어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지자본을 제3의 자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테어는 농업경영을 추상적인 자본의 투하로서 파악하면서 농업경영을 구성하는 요소 요인으로서 노동, 자본, 조재료(토지), 지력(지식 및 기술적 능력)의 4요소를 들고, 경영체를 이들 요소의 구체적인 조합체로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3. 테어의 합리적 농업의 원리
테어가 쓴 “합리적 농업의 원리”의 구체적인 내용은 농업을 재료 자본적인 의미를 갖는 토지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토지는 본래 토양부분과 비토로 이루어져 있는데, 토양부분은 불변부분으로 작물의 영양이 될 수 없는 부분이고 비토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항상 변하고 파괴, 소실되는 부분이며 작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소위 부식물, 부식질 또는 부식토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다.
또한, 구비를 얻기 위해 가축을 축사에서 기를 경우에는 사료를 확보하여야 하는데 그것은 토지이용방식 속에 사료작물이 포함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종래의 동작물 + 하작물 + 휴한 이라는 삼포식 경영으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삼포식에서 휴한을 폐지하고 사료작물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던 것이다.
테어의 합리적 농업에 관한 근본사상은 보상설에 있다. 그는 농업이 자연 또는 토지라고 하는 것을 매개로 하여 인류에 필요한 생활물자를 경제적, 합리적으로 획득하려는 영위체계라고 했던 것이다. 자연에 있는 그대로를 채취하는 것이 아니고 토지에 대하여 작물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주고 길러서 그 결과 얻어지는 것을 채취하는 것이 농업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즉 공급해 준 영양분을 결과물로 변질시키는 장이 토지 곧 자연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테어의 농학사상은 자연계의 순환을 인위적으로 합리적으로 조합하자는 것이다. 테어는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윤작방법이 가장 좋은 경영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부식토 - 축사 내 가축사육 - 윤작이라고 하는 순환적 균형이 가장 합리적인 농업이라고 하는 이념에서 서 있는 한 윤작방법이 여러 경영방식 중 최선이며, 유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런데 테어의 이와 같은 농업에 있어서의 순환적 균형의 이론에 대하여 현실적인 측면에서 격심한 반론이 일어났다. 그의 친구 슈와르제에 의해서 심하게 반론을 받았는데, 각 지방을 다녀보면서 윤재방식이 적합한 곳이 있는가 하면, 곡초식이 적합한 곳도 있으며, 삼포식이 적합한 곳도 있어서, 일괄해서 절대적으로 윤재식이 최선의 것이라는 테어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지역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테어의 이와 같은 방식은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 완전한 방식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각기 구체적인 경우에 있어 모두 최선의 방법은 아니고 장소적, 시대적, 인간적 사정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학습문제 >

1. 학자와의 관련내용에 대한 연결이 틀린 것은?
① Munchhausen - 가부학  ② Beckmann - 독일농업론
③ Schubart - 클로버전경  ④ Young - 소농론
(해설) 영(Arthur Young)은 소농에 의한 농업을 배격하고 기업주의적인 대농론을 주장하였다.

2. 대표적인 관방학파로서 경작강제, 공동방목제, 부역제 등을 폐지하는 정책을 주장한 학자는?
① Young ② Justi ③ Townshend ④ Schubart
(해설) 유스티(Justi)는 낡은 농업제도를 폐지할 것을 주장한 대표적인 관방학자이다.

3. 실험적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가축사양법 개량에 관한 연구로 훗날 테어에게 큰 영향을 준 학자는?
① Bergen ② Tull ③ Reichart ④ Townshend
(해설) 베르겐(Bergen)은 실험학파로서 가축사육법 개량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가축사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4. 공유지 농업의 폐지와 자본자적 농업을 발전시키고 특히 유축 윤작식 경영방식을 채용하는 대농론을 주장한 학자는?
① Schubart ② Young ③ Thear ④ Beckmann
(해설) 영(Arthur young)은 소농으로는 빈곤해지며 농업개량도 곤란하고 노동수요도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대농이어야 함을 주장했다.

5. 슈바르트와 타운센드 등은 삼포식농업 경영방식에서의 휴한대신에 클로버나 순무를 도입하는 윤작방식을 주장하였는데 근본이유는?
① 유효토지의 합리적 이용  ② 유휴노동력의 합리적 이용
③ 토양의 개량과 가축의 사육 ④ 가족노동경영의 합리화
(해설) 휴한대신에 클로버나 순무 같은 사료작물을 재배하면 가축의 사료가 얻어질 뿐 아니라 토지의 물리적 성질이 개량된다.

6. 농학이 독립된 과학으로서의 위치를 세우는데 공헌한 학자는?
① Beckmann ② Thaer
③ Schubart ④ Townshend
(해설) 농학이 과학으로서 체계를 이룬 것은 19C초 Thaer에 의해서다.

7. 테어는 농업경영을 자본의 운영체라고 했는데, 농업에 있어서 공업에서의 원료, 자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본 것은?
① 노동자본 ② 토지자본
③ 고정자본 ④ 유동자본
(해설) 토지자본은 공업에서의 원료, 자재로서의 성질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8. 테어의 “합리적 농업의 원리”에서 순환적 인과관계에 있다고 본 농업경영 방식은?
① 부식질 - 가축사육 - 윤작  ② 휴머스 - 구비 - 가축사육
③ 곡식작물 - 클로버 - 순무  ④ 삼포식 - 개량삼포식 - 노퍽(Norfolk)식
(해설) Thaer가 합리적 농업의 원리에서 주장한 순환적 인과관계의 경영방식은 부식질 - 가축사육 - 윤작이다.

9. 테어의 합리적 농업의 근본사상인 보상설의 대상은?
① 부식질 (humus) ② 고정자본
③ 토지 ④ 윤작
(해설) 농업 중학파는 Thaer의 부식질에 의한 보상설을 그대로 신봉하면서, 이를 더욱 순화시켜서 유기질 비료임을 강조했다.

10. 테어의 농학에 대한 설명이 틀린 것은?
① 19C초 농학을 과학으로서 체계화하고 독립된 과학으로서의 위치를 확립했다.
② 그의 농학체계는 농장에서의 시험적 방법에 의해 이루어졌다.
③ 그는 사회전체의 이익보다는 개개 농가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④ 농업을 자본의 투하, 자본의 운영체로 생각하였다.
(해설) Thaer는 개개의 농가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의 전체적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11. 농학성립 이전의 발달단계가 옳은 것은?
가부학파 - 실험학파 - 관방학파 - 기업학파
가부학파 - 관방학파 - 실험학파 - 기업학파
관방학파 - 기업학파 - 가부학파 - 실험학파
관방학파 - 기업학파 - 가부학파 - 실험학파
(해설) 가부학파는 1650 ~ 1750년, 관방학파는 1727 ~ 1800년경, 실험학파는 1750 ~ 1800년, 기업학파는 1800년대 초기로 볼 수 있다.

12. 농학의 전사적인 단계로 학자가 옳게 연결된 것은?
가부학파 - 베크만
관방학파 - 뮌히하우젠
실험학파 - 영
기업학파 - 타운센드
(해설) 뮌히하우젠은 가부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가부학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관방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는 베크만으로 그는 독일농업론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기업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는 영으로 그는 소농에 의한 농업을 배격하고 대농론을 주장한 학자로서 유명하다. 타운센드는 기업학파로서 노퍽윤작방식을 만들어 냈다.

13. 테어사상의 이론적 전개과정을 알 수 있는 저서의 발행순서가 옳은 것은?
일반농학입문 - 합리적농업의원리 - 영국농업론
일반농학입문 - 영국농업론 - 합리적농업의원리
영국농업론 - 합리적농업의원리 - 일반농학입문
영국농업론 - 일반농학입문 - 합리적농업의원리
(해설) 테어가 농업에 뛰어든 학문적 동기는 “영국농업론”에 설명되어 있고, 테어가 실제 농업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합리적농업의원리”를 작성하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학문연구를 체계적으로 최후에 “일반농학입문”이라는 저서를 통해 정리하고 있다.

14. Thaer의 사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농업경영을 자본의 운영체로 설명하고 있다.
제3의 자본으로 토지자본이 있다.
농업은 고정자본으로서 의미를 갖는 토지 위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윤작방식이 가장 좋은 경영 방식이라고 하였다.
(해설) 농업은 재료 자본적 의미를 갖는 토지위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15. Thaer가 “합리적 농업의 원리”라고 본 것은?
동 작물 - 하 작물 - 휴한의 삼포식농법
순무 - 보리 - 클로버 등의 노퍽농업
부식토 - 가축사육 - 윤작의 순환농법
순무 - 보리 - 클로버 - 목장 - 밀 - 보리의 6포식 윤작법
(해설) Thaer는 부식토 - 축사 내 가축사육에 의한 구비생산 - 윤작 사이에는 밀접한 순환적 인과관계가 성립되며 그것이 바로 “합리적 농업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16. Thaer의 윤작방식이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틀린것임을 체계적으 로 정리한 대표적인 저서는?
경영방식의 갱신
고립국
농업에 대한 에세이
비료자본과 약탈농업
(해설) Thaer의 제자인 코페(Koppe)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경영방식의 갱신”이라는 저서에서 윤작방식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17. 영국에 근원을 둔 농학성립 이전의 학파는?
가부학파
관방학파
실험학파
기업학파
(해설) 농학의 전사적인 단계로서 가부학파, 관방학파, 실험학파는 독일에서 번영을 누렷으나 기업학파는 영국에 근원을 두고 있다.

18. 18C 영국에서 노퍽윤작방식(Norfolk rotation system)을 만들은 사람은?
튤(Tull)
타운센드(Townshend)
코크(Coke)
영(Young)
(해설) 타운센드는 순무경으로 불릴 정도로 순무를 농업경영에 도입하는데 열심이었던 기업학파의 한사람이다. 순무 ― 보리 ― 클로버 ― 밀 이라는 4년 cycle의 윤작방식이다.

19. 슈바르트는 종래의 삼포식 경영에서 휴한을 폐지하고 무엇을 작부방식 속에 도입했는가?
① 순무 ② 클로버
③ 라이그래스 ④ 옥수수
(해설) 슈바르트는 휴한을 폐지하고 그 곳에 목초를 재배하여 클로버 보급에 앞장서서 ‘클로버 전경’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20. 테어의 뫼글린시대의 대표적인 저서는?
①『용국농업론』 ②『일반농학입문』
③『합리적 농업의 원리』 ④『순환보상론』
(해설) 첼레교회 농장에서의 실험을 바탕으로 “영국농업론”을, 뫼글린농장에서의 실험을 바탕으로 “합리적 농업의 원리”라는 저서를 썼다.


<정답>

번호 1 2 3 4 5 6 7 8 9 10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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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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