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문학사단의 개화
중국에서는 오사운동 이후 수많은 문학사단들이 결성되었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무슨 무슨 동인” 정도에 해당되겠습니다만, 우리 교재에서는 중국적 특수성을 인정한다는 뜻에서 중국인들이 쓰는 문학사단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사운동은 긴 중국 역사에서 최초로 성공한 시민운동이라고 할 만 합니다. 오사운동의 성공에 힘입어 중국에서는 서구 근대 정치사회사상이 천명했던 기본권인 정치적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과 출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이 미흡하나마 처음으로 공인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지식인과 문인들은 지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단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고, 비슷한 문학적 주장과 취향을 가진 문인들은 문학사단이라고 하는 문학 단체들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오사운동 이후 중국에서는 많은 문학사단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는데, 이런 상황은 당시 중국의 문인들이 매우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문학 활동에 임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1. 문학혁명의 새로운 단계
오사운동 전야에 문학혁명을 선도했던 것은 陳獨秀가 창간한 <신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청년>은 국민계몽을 목표로 한 종합잡지였고 문학 전문지는 아니었습니다. 오사운동 이전에는 신문학의 저변이 약했고 또 보수적인 체제의 억압으로 인해 당시의 규범에 어긋나는 문학잡지를 자유롭게 간행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던 것이 오사운동 성공으로 신문학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가 상승하고 각종 억압적이고 전근대적인 제약이 철폐되어 다양한 문학잡지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신청년>의 창간자인 진독수가 정치운동으로 투신함에 따라 <신청년>이 정치적인 성격의 잡지로 변화하고 더 이상 문학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주지 않은 것도 또 다른 이유입니다.
2. 문학연구회
우리 교재에서는 문학연구회와 창조사에 대해서만 지면을 많이 할애하였으며 다른 문학사단에 대해서는 이름만 몇 가지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 두 문학사단이 중국 현대문학의 활동을 포괄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면 관계상 다른 문학사단들까지 소개하기가 힘들고 또 중국 현대문학의 출발 상황에 대한 이해는 두 문학사단을 이해하면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다른 문학사단들까지도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정진탁, 모순, 엽성도, 주작인 등이 중심적인 인물이었던 문학연구회는 “爲人生的文學”의 구호로 유명합니다. 실상 그 구호의 내용은 모호하지만 그 모호성 때문에 문학연구회는 성향이 다소 다르더라도 서로 갈등을 겪지 않고 수많은 문인들이 공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심심풀이로 문학을 대하지 않고 진지한 자세로 사람들의 삶을 더 좋은 상태로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정도의 뜻이겠지요. 문학연구회의 기관지 <소설월보>는 <신청년> 이래 가장 장수를 누린 근대적 잡지의 하나였습니다. 문학연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주의와 인도주의 정도가 가장 보편적인 경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 창조사
문학연구회보다 1년 쯤 뒤에 곽말약, 성방오, 욱달부, 장자편, 전한 등 주로 젊은 일본 유학생 출신의 문인들이 모여서 결성한 창조사는 문학연구회보다는 한층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들이 내걸었던 “예술을 위한 예술, 문학을 위한 문학”은 순수문학에 탐닉한다는 뜻이 아니고 개인적 신념에 바탕을 둔 자유롭고 진취적인 문학 활동이라는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문학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들은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서구에서 성행했던 후기 낭만주의의 개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예술적 경향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문학연구회를 중심으로 모여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은 비록 이전의 사대부들에 비해서는 진보적이었지만 자신이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나”라는 사람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대해 어떤 주체적 태도를 취할 것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집단주의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인생을 위한 문학이라든가 진지한 문학이라든가 하는 문학연구회의 천명은 “조국 혹은 민족을 위한” 내지는 “사회적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등과 같은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애국애족적인 문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 것이겠지요. 그들은 문학이란 현실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살아있는 인간의 정신적 자유와 개성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개인은 없고 집단만이 있는 답답한 중국의 현실에 대한 젊은 세대의 저항과 반항정신을 상징합니다.
4. 문학혁명에 대한 역풍
오늘날에는 신문학운동이라고 하는 흐름이 매우 중요하게 서술되지만 사실 오사운동 당시로 돌아가 보면 그것은 북경대학을 중심으로 모여 든 일부 지식인과 학생들 사이에서 전개되고 있던 급진적인 운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유구한 문화유산을 무시하고 민족적 자부심을 저버리는 철없는 행동을 보였겠지요. 임서, 엄복과 같은 점진적 개량주의자들은 문학혁명이 민족적 전통을 저버리는 철없는 짓이었습니다.
이 당시 문학혁명을 비판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고탕생, 매광적, 호선숙, 오복 등 의외로 서구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신학문을 공부했던 사람들이 나서서 신문학을 하더라도 중국적 전통을 져버려서는 안 된다는 우려를 표명했던 일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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