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서구와 비서구 세계
1. 동양과 서양, 서구와 비서구
에드워드 사이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동양과 서양은 세계지도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편견의 세계’이다.
* 메르카토르식 지도 작성법 : 16세기 네덜란드의 지리학자인 메트카토르가 만든 세계 항해지도로써 유럽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다른 대륙보다 훨씬 더 크게 그리는 방식.
세계의 중심은 유럽이고 서양과 북반구가 문명의 중심이라는 인식을 강화하게 된 것.
- 1974년 피터스의 투영도에서는 세계의 국ㄱ가들을 실제 크기에 맞게 나타냄으로써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고
남반구와 비서구 사회를 보다 적절하게 표현하였으며, 유럽은 상대적으로 축소하였다.
- 서양인들은 세계의 역사를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그리스, 로마를 거쳐 중세 유렵을 지나 유럽의 르네상스와 상업혁명으로 진보하는 것이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 대륙은 모두
유럽인들이 나중에 ‘발견’한 것처럼 기술하였다.
최근 역사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유럽 중심의 역사와 서구중심주의 세계관과 문명관이 유럽의 지식인들이 만들 어 놓은 ‘상상의 동양과 날조된 지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오리엔탈리즘 : 동양을 지배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만들어진 허위 지식체계. 동양을 서양보다 열등하고 미개한
세계라고 상상하고 조작하는 인식 방식이고, 동양에 대한 계몽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유럽 중심의 잘못된 세계관과 편견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 이러한 상상의 지리와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세계지도이다.
2. 두 세계와 식민지 조우
오늘날과 같은 동양과 서양, 서구와 비서구, 그리고 북반구와 남반구라는 양분된 세계는 식민주의 시대로부터
기원한다.
- 유럽인들은 15세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상상의 동양’을 찾아 나섰다. 이때 서양인들은 서구의 물질문명과 무기, 화포, 그리고 성경을 가지고 갔으며, 동양에서는 새로운 기이한 물건과 동식물들을 가져왔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대사건을 통해 전개되는 유럽 중심 역사는 동양의 세계를 야만으로 날조 하거나 과장한 것이다.
* 이븐 할둔 : 튀니지 출신의 역사학자. 14세기에 이라크, 인도, 중국 같은 비아랍권 국가에서 오는 상인들은 유럽 보다 더 부유하고 훨씬 떵떵거리는 동양인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 안드레 군더 프랑크 : 종속이론. 유럽과 아시아의 세력 판도가 역전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815년경이라고 본다.
* 바스코 다가마 : 희망봉 발견과 인도항로 탐험
* 아마드 이븐 마지드 : 이슬람의 항해자. 바스코 다가마보다 20~50년 앞서서 희망봉을 돌아 서아프리카 해안을
거슬러 올라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여 지중해로 진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도 역사적으로는 최초의 일이 아니며, 북유럽의 변방에 살던 바이킹족들은 이미 10세기에 지금의 알래스카와 캐나다 지역을 왕래하였고 1000년경 그린란드를 떠나 북미 대륙으로 온 바이킹 일행은 지금 의 뉴펀들랜드 북동지역을 점령하고 빈란드라고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이처럼 유럽인들에 의한 신항로 탐험과
신대륙 발견은 처음부터 과장과 날조된 것이었다.
* 정화(鄭和) 원정대 : 중국 명나라의 해상왕이 이끈 원정대. 1405년부터 1433년 기간 중 7차례에 걸쳐 세계의
바닷길을 항해했으며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원정했다고 한다.
- 영국 해군 장교 출신 개빈 멘지스는 콜럼버스보다 71년 앞선 1421년에 아메리카를 발견했고, 마젤란보다 98년 앞서서 세계 일주를 하고, 바스코 다가마보다 80년 먼저 인도양을 항해했으며, 쿡 선장보다 300년이나 먼저 호주 에 첫발을 내딛고 유럽인들보다 400년 먼저 남극과 북극을 탐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콜럼버스가 1492년에 그토록 고대했던 인도가 아니라 오늘날의 바하마와 도미니카 공화국, 쿠바 등이 있는
카리브 해 연안의 섬들에 도착했다. 인디언의 유래도 아메리카를 인도로 착각하고 부른 데서 연유한 것.
- 콜럼버스의 탐험은 애초부터 이교도들에게 기독교 전파와 개종을 위한 것이었고, 또 다른 십자군 원정이라는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포르투갈과의 해외 팽창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원된 것이다.
- 유럽인들은 금을 찾고자 하였고, 금을 위해 잔혹한 원주민 학살을 시작하였다.
유럽인들의 눈에 비친 인디언들은 ‘미개하고 잔인한 야만인들이고 악마의 자식들’인 데 반해
인디언들에게 유럽인들은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두렵고 기이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 존 맨드빌 : 14세기 기사. 여행기『약속의 땅으로의 여행과 편력』에서 다른 곳에 사는 이방인들이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몸’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 세바스찬 뮌스터 : 독일의 신학자이자 수학자. 『세계지리학』(1544)에서 야만인, 미개인, 괴물들에 대한 내용이 각각의 장으로 나누어 기록되어 있다.
* 아메리고 베스푸치 : 항해자. 그가 쓴 모험기들은 유럽에서 콜럼버스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
- 15, 16세기의 유럽인들에 의한 신대륙 발견은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노예화의 길을 의미했다.
신대륙 발견으로 아프리카의 가장 큰 비극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른바 아프리카인들의 세계적인 이산(diaspora)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 16~18세기에는 아메리카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지역에까지 유럽인들의 탐험대가 도착하였고,
모든 지역에서 침략과 잔혹한 학살의 역사가 반복되었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 『총, 균, 쇠』라는 책을 통해 문명의 수수께끼를 추적하였다. 이 책에서 거의 모든 비서구 문명사회들이 유럽인들과의 접촉과 침탈 과정에서 사라져 갔음을 주목하고 있다.
쇠칼과 같은 철기 무기들과 총, 전혀 면역성이 없는 질병과 병원균들이 원주민 사회를 붕괴시킨 주요 요인이었다는 것.
- 초기 식민지 시대에 약탈과 노예화, 질병도 무서웠지만 서구인들은 의도적인 원주민 말살정책을 실행하기도 했다.
- 당시 북미에는 1,000여 개의 종족이 1,000만 명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4세기가 지난 후에는 고작 22만
명만 살아남게 되었다.
- 뉴멕시코 지역의 인구는 1519년에 1,100만 명에 달했지만 1650년에는 150만 명만 남게 되었다.
- 멕시코에서는 1519년에 에스파냐가 아즈텍을 정복한 이래 2,500만 명이던 인구가 50년 후에 600만 명으로 줄었 으며, 1600년에는 100만 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 페루와 멕시코를 정복할 때도 대량 무차별 학살 이외에도 생물학전, 독한 술, 강제 이주, 투옥과 구금, 원주민 여 성의 강제 불임, 아동 납치, 종교 의식 금지, 백인들의 가치관 주입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 것이다.
- 아프리카에서 유럽인들은 신대륙을 개척하기 위한 노예들을 공급하기 위해 무차별적인 노예사냥에 나섰다.
이들의 저항과 방어 행윌ㄹ 유럽인들은 종족 폭동과 종족 간 학살 행위라고 서술하였다.
노예선으로 아메리카에 노예로 수송한 아프리카인들만 해도 1,000만 명을 넘는다. 이들 대다수는 18세기에 끌려 갔으며, 카리브 해 지역과 브라질로 가장 많이 팔려 갔다. 노예선들은 영국의 식민지 지역에 가장 많이 수송되었 으며, 해마다 5,000~6,000여 명씩 노예로 끌려갔다고 전해진다.
- 호주와 뉴질랜드,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에서도 유럽인들의 잔혹한 약탈과 살육, 질병과 종족말살정책은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무차별 살육이 대표적이다. 혈통은 완전히 끊어졌고 종족 말살이 완성되었다. 영국 정부와 식민지 공권력은 태즈메이니아인들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절시켜 버렸다.
* 제국주의 : 머나먼 영토를 지배하는 제국의 태도와 이론과 실천을 말한다.
* 식민주의 : 머나먼 영토에 이주하여 직접 정착하고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 영국은 전 세계적으로 간접통치 방식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에스파냐나 포르투갈, 프랑스 등 다른 국가들은 직접 통치 방식을 취했다.
- 오늘날 직접적인 제국주의는 종말을 고했지만, 제국주의는 문화적 측면에서 정치적·이념적·경제적·사회적 실천에 서 여전히 남아 있다.
- 식민주의는 전 세계에서 인종들의 질서, 즉 인종들 간의 위계서열을 만들었다.
- 백인들과 흑인들 사이에는 현지 원주민들과 인도 등지에서 플랜테이션 노동자들로 계약하여 전 세계로 데려간
이주민들이 있었다.
- 아프리카에서 팔려 온 노예들은 최하위층으로 인간 취급을 받을 수도 없는 격리된 자들이었다.
3. 제3세계의 탄생과 종언
동양과 비서구 사회의 탄생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결과였다면, 제3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 정치 의 산물이다. 전후 제1세계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세계이고, 제2세계는 구소련과 동구권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블록을 의미했다. 그리고 제1세계와 제2세계가 아닌 모든 국가를 제3세계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제3세계라는 용어는 전후 비서구사회를 지칭하는 용어이면서 낙후된 저발전국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혹은 77그룹 (G-77)과 같이 비동맹 독립국가들을 의미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1989년 이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구소련이 급속히 해체되면서 냉전시대가 종말을 고한 후, 제1세계도 제2세계도 제3세계도 없는 다극화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제3세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 및 격리주의 정책. 17세기부터 백인들의 식민주의를 통해 확립 된 것. 소수의 백인이 85%의 흑인을 지배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은 각 인종들의 거주 구역과 업무 구역을 분리하고, 사회문화적 접촉뿐만 아니라 혼인도 금지하는 극단적인 정책이다.
- 자신의 우월성에 토대를 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편견 또는 명시적 적대행위로서의 인종주의는 식민주의를 정당화 할 뿐 아니라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 인종주의자들은 인종을 미개, 반문명, 문명으로 나누기도 했으며, 오직 아리안족과 셈족만이 문명화되었다고 보았 다. 중국도 유럽인들이 볼 때는 발육을 멈춘 반문명 상태였다.
- 외국인 차별과 외국인 혐오주의는 모두 인종주의의 다른 형태이다.
다민족의 공존과 상호 존중을 인정하지 않고 자국민과 자문화, 자신의 인종적 우월성을 강조하고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은 인종주의와 다를 바 없다.
* 제국주의자들의 향수 : 문명화된 국가가 야만적인 국가들을 부양하고 고양시킬 의무가 있다는 ‘백인의 책무’라는 특수한 사명감과 함께 일어난다. 영화「인도로 가는 길」,「아웃 오브 아프리카」,「부시맨」과 같은 작품들은 백인들의 식민사회를 우아하고 질서 있게,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백인들에 게는 일종의 제국주의적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4. 발전과 저발전-선진국과 개발도상국
* 발전 : 인간의 잠재 능력을 증진하고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며,
인간의 선택권과 인권, 자유를 신장하는 가치 지향적이고 질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질적인 관점에서 볼 때 경제적 측면만으로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발전하였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 인간의 자유와 정체성, 인권과 선택권은 문화 다양성을 증진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 1999년 하버드 대학에서 ‘문화적 가치와 인류발전 프로젝트’라는 세기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새뮤얼 헌팅턴, 제프리 삭스, 로렌스 헤리슨과 같은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여했으며, 발표된 논문들을 엮어
『문화가 중요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 문화상대주의자들 : 모든 문화는 각기 고유한 발전의 목표와 윤리를 지니고 있으며 다른 문화의 기준으로 발전 목표와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전이란 문명 개념이나 진보 개념과 같이 서구가 다른 문화권에 강제로 이식하거나 부가하는 개념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반문화상대주의자들 : 발전주의자와 진보를 신봉하는 자들은 이미 발전은 서구나 비서구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인류사회가 추구하는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목표가 되었다고 할 것이며, 빈곤과 질병, 문맹의 퇴치뿐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기회를 넓히고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기본적 인권 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발전이 보편적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 어떤 입장이든지 관계없이 발전하는 데 문화적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는 모든 학자가 동의하고 있다.
* 문화가 목표, 발전은 수단 : 문화를 개조하지 않고서는 어떤 발전도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
발전의 목표는 문화, 즉 인간들의 마음 상태를 바꾸는 일이 되는 것이다.
* 화이트헤드 : ‘문명의 진보란 반드시 더 좋은 상태를 향해서만 일률적으로 발전해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함.
- 진화주의는 특히 기술과 경제적 관점에서 유럽사회의 우월성을 입증하고자 하는 유물사관과 발전 이론이
유행하면서 제3세계와 저발전국 혹은 후진국이라는 수준 낮은 발전 단계에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미개사회를
숱하게 만들게 되었다.
- 발전주의는 진화주의와 같이 유럽식의 제도와 관념을 신생 독립국가들에 이식시킴으로써 이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잘 살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촉진하여 주민들이 서구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살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또 다른 근대화의 이념이다.
- 세계화는 경쟁적·폭력적이고 제국주의적이다. 국가, 자본, 시장, 시민사회를 하나로 가깝게 연결하고 세계를 하나 의 지구촌으로 만들어 주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끊임없이 또 다른 ‘야만’과 ‘부적응 문화’를 만들어 낸다.
세계에 포섭되지 못한 빈곤 국가들과 오지의 지방은 세계화의 피해자가 되고 야만이 된다.
문명과 야만의 양극화는 식민주의 시기와 같이 다시 한 번 반복된다.
* 에드워드 사이드 :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문화는 여러 가지 정치적·이념적 명분들이 뒤섞여 있는 극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 전 세계는 200개가 넘는 독립국가로 나누어졌다. 일부 학자들은 앞으로 수백 년이 지나면 독립국가는 500개가 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한다. 이는 사람들이 거대 국가보다는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자율 적이고 작은 규모의 정치 공동체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 분리독립운동은 고유한 문화권을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다.
- 자신들과 다른 집단을 구분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문화의 차별화와 정치화 현상은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거대한 문화자본의 침투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언어와 종교, 문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정치와 저항의 과정에서 종교적 근본주의가 더욱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며, 전통의 복귀와 부활과 같은 문화정치 현상도 나타난다.
* 문화다양성 협약 : 유네스코가 주도한 협약.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 이제 문화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일 뿐 아니라 경제의 핵심이고 정치의 축이기도 하다.
문화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과 타자의 모습을 견주어 바라보고,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봄 으로써 현실 문제의 근원을 생각할 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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