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격은? 상담, 심리학 필수 성격심리학 요점 요약 정리 9. 아들러의 생애
9. 아들러의 생애
Alfred Adler, (1870~1937)
♤ 오스트리아의 한 유복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남.
♤ 5남 2녀 중 셋째였으며, 그의 형제 중 1명은 어려서 죽어서 6남매 중 차남이 됨.
- 차남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근거가 됨.
♤ 어릴 적 구루병을 앓았고 4살 때, 폐렴으로 죽음을 경험했으며, 길거리에서 손수레에 치여
2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김
♤ 아들러는 만성적으로 병들고 약한 아이로 엄마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자라다 동생들의
출생으로 그런 보호를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됨.
♤ 어릴 때 육체적인 놀이에선 그의 형이나 친구들과 경쟁할 수가 없었음. 이러한 이유로 어릴
때 이미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음.
- 그의 초기 몇 년 동안은 아동기의 유약함과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이었음.
♤ 학교에서 수학 성적이 매우 낮아 학교 선생님은 그의 아버지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제화공으로 일하도록 종용할 정도로 심한 열등감을 경험
♤ 아버지의 격려로 학업을 계속하여 결국 학급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 됨.
- 열등감을 극복하고 보상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의 생활양식이 가능하도록 함.
♤ 대학시절에 맑스주의 학생모임에 가담하였으며, 이 시절 사회주의의 심리학적 철학적 측면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짐.
- 그가 특별히 "사회적 관심"을 중시한다는 사실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됨.
♤ 1895년에 의학 공부를 끝내고 안과의사로 개업하였다가 신경전문의로 바꿈.
- 질병에 대한 보상으로서 의사가 됨.
- 그의 경험들은 열등감과 우월성의 추구라는 개념이 주가 되는 그의 독특한 이론체계를
형성하는 밑바탕이 됨.
♤ 1902년에 프로이드와 만났으며 수요토론회에 참여
♤ 이 모임들에서 그는 자신의 독자적 견해들은 발표하고, 시간이 가면서 그의 생각은 Freud와
점점 멀어졌지만, 둘 다 조심하여 충돌을 피하였음.
♤ 911년 빈 정신분석학회 회장으로 있을 때 ‘Freud의 성이론 비판’이라는 제목으로 몇 개의
강연을 하면서 결국 정신분석의 성역을 침범
♤ 강연 내용 : 안전추구가 성 만족보다 중요하고, 무의식은 원초아의 영역이 아니라 자아의
도구라는 주장을 함.
♤ Adler입장 : 프로이드의 생물학적이고 결정론적인 관점을 취하지 않고 사회적, 심리적, 비
결정론적 인간관
♤ 회장직을 내놓고 몇 달 후 회원으로서도 탈퇴
- 1912년에 자신의 학회, ‘개인심리학회’를 창설
♤ 1912년에 우월성 추구, 열등감이라는 개념을 정신건강에 도입하기 시작, 아들러식 심리치료
♤ 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 정부의 요청으로 비엔나의 여러 공립학교에서 아동상담소를
운영하면서 아동에 대한 집단치료와 가족치료를 실시
♤ 1920년대에는 주로 예방에 관심, 아동기관 교사들에게 아동생활지도 훈련 실시하며,
공립학교에 수많은 아동생활지도센터가 설립됨.
♤ 1926년 그는 미국에서 최초의 강의를 하며, 폭넓은 청중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훌륭한
연설가로서 활동
♤ 1932년, 뉴욕 롱아일랜드의과대학의 교수로 임명되며, 나치스를 피해 미국에 정착
♤ 1937년 5월 28일 강연 여행도중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
♤ 지칠 줄 모르는 강사였으며 활발한 저술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생애동안 300여권의
책과 논문집을 발간했는데 대표적인 저술로 "개인주의 심리학의 이론과 실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