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가공 및 보석세공의 A to Z 귀금속 디자인 요점 정리 25. 서양 장신구사 1
25. 서양 장신구사 1
가. 장신구의 역사
아름다움과 개성추구, 현대 여성의 라이프 스타일-귀금속, 보석 장신구를 빼놓고서는
그 높은 진가를 연출해 내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귀금속, 보석 장신구는 일상생활의 깊숙한 곳에 자연스럽게, 그리고 사치품이 아닌 소
중한 신변 장식용품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우리 인류는 언제부터 장신구를 애용하
게 되었을까?
최초의 장신구는 아마도 선사시대에 아름다운 조개껍질이나 빛을 발하는 조약돌, 또는
사냥에서 얻은 짐승의 뼈 등으로 아름다움과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또는 신체
의 추한 부분을 은폐하기 위하여 장신구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고학적 증거로 J. Anderson은 BC 2만 5천∼1만 5천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
는 모나코에서 발견된 세 개의 물고기 등뼈 목걸이가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 중 최고로
오래된 것이라고 그의 저서‘The story of jewelry’에서 명시하고 있다. 현재 생 제프
멩 앙레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장신구는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귀금속 및 보석으로 다양해졌다. 단지 원시적인 미적
욕구뿐만 아니라 악령을 쫓고, 장수와 건강, 부와 행운을 징표로 종족을 표시하기 위해
서, 그리고 지배와 권력의 상징으로 이용되어 왔다. 이는 태양을 숭배했던 고대인들이 햇
빛을 받아 반짝이는 돌을 발견했을 때 태양처럼 신비함과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일 것으
로 짐작되어지고 있다. 초기의 고대 장신구가 인간의 원초적인 미적 의식과 함께 주술적
인 측면, 그리고 지배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사회적 측면 등 여러 목적으로 사용되어 오면
서,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보석의 주술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미학적인 면이 강조되었
으며, 이때부터 남성들은 보석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고 보석은 여성화되기 시작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귀족계급의 소멸과 함께, 극히 일부이지만 보석을 일반시민
도 애용할 수 있게 되었고,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르네상스 이후 새로운 장식 예술의
번창기인 아르누보(Art Nouveau)시대에 카스텔라니, 쥴리아노, 라릭, 올파즈, 젠센 등
많은 디자이너 중심의 장신구 공급이 1925년 이후 세계 전쟁 등에 따른 새로운 예술사
조인 아르데코(Art Deco)시대에 가라드, 모브상, 반 클리프 등 왕실 및 귀족중심 판매
의 보석점이 일반 시민에게 판매를 위한 기업스타일로 변천되었다.
장신구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 일본이라는 초 경제 대국으로 옮겨지면서 그 전담자
가 특권층에서 일반대중으로 폭넓게 확산된 현대에 이르렀다.
사회, 문화 양식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장신구의 개념 및 기능이 착용자의 미
적 개성 표현 및 사회적인 지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또는 자아실현, 만족 등, 사회구
성원 상호간의 사회 문화적 환경 변화의 커뮤니케이션 기능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사회의 부(富)가 일반시민에게로 확산되면서 장신구의 효용 및 기능이 다
양해졌고, 이에 장신구를 찾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점포가 증가하게 되었
으며 하나의 장신구 전문기업으로까지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대량 생산 체제까지 실현된 지금은 소규모 공방, 각종 형태의 점포 및 전문생산
업체의 공급과잉으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많은 장신구들이 풍요 속에서 착용자들이 선
택의 혼란까지 일으키고 있을 실정이라 해도 과언 아닐 정도이다.
이러한 추세는 우리 인류가 적어도‘문명’이란 생활 속에 존재될 때까지는 그 효용 및
기능은 지속적으로 변화되어지고, 또한 그에 상응한 각종 제조기술도 발전해 나갈 것임
은 주지의 사실인 것이다.